유의태 문하에서 왜 쫓겨났는지 네놈 꼴을 보니 알겠다.
- 삼적대사
건달 패거리에 두들겨 맞아 입술은 터지고 온 몸에 피멍이 든 허준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다.
이때 허준은 두어 명의 짐꾼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 오는 유도지를 보고 깜짝 놀라 한쪽으로 급히 몸을 숨긴다.
깊은 절망에 빠진 채 담벼락에 기댄 허준은 그저 유도지 일행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별안간 허준을 지켜보던 삼적대사가 크게 꾸짖는다.
못난 놈!
의원이 될 줄 알았더니 네놈 본색은 개망나니였구나.
허준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삼적을 쏘아보지만 삼적이 말을 이어간다.
유의태 문하에서 왜 쫓겨났는지 네놈 꼴을 보니 알겠다.
당신 같은 땡중이 뭘 안다고 이죽대는 거요?
삼적은 입가에 냉소를 띠며 허준에게 '왜 억울하냐?'라고 묻는다.
난 혼신을 다했소.
삼 년을 하루같이 병사에 잡다한 허드렛일을 도맡고 정성을 다해 의술을 익혔어.
내 힘으로 죽어가는 병자를 살리고 운신도 못하는 풍병 환자를 일으켜 세웠어.
난... 난.. 그 공을 스승께 돌렸는데.. 내 스승은 나를 내치더이다.
날 천거하는 서찰 한 장 받았다고 날 내쫓더이다.
내가 뭘 잘못했소?
대체 뭘 잘못해서 의원의 자격이 없다 하는 것이요?
삼적은 말없이 허준을 바라보다가 말한다.
의원이 병자를 살리면 병자도 의원을 살린다.
한 사람 병자를 구할 때마다 헛된 욕심과 사악한 마음에서 자신을 구하지.
헌데 네놈은 병자만 살릴 줄만 알았지 너 자신은 구하지 못하였구나.
내 말뜻을 알면 니 스승이 왜 널 내쳤는지 알게다.
삼적대사는 허준의 마음을 휘젓고 그렇게 멀어져 갔다.
허준은 가만히 그 말뜻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가난한 민초들의 아픔을 마음으로 어루만졌던 의원 허준이 처음부터 참된 의원의 마인드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허준이 심의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참된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원의 소임은 첫째도 병자요, 둘째도 병자다.
의원이 병자를 살리면, 병자 또한 의원을 살린다.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 그것이 곧 의원의 마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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