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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아프리카 추장이 된 식물학자

by goodmind.kr 2022. 2. 28.

열대성 뿌리작물 카사바

 

1971년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는 심각한 기근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지난 3년간의 비아프라 내전으로 농토가 황폐해졌고 더욱이 사람들의 주식인 카사바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창궐해 카사바가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사바는 세계 8대 작물 중 하나로 8억 명의 사람들이 주식으로 삼고 있는 열대성 뿌리 식물이다.

그런데 박테리아 마름병과 모자이크 바이러스에 걸린 카사바는 말라죽어갔고 생산량이 80%나 감소했다.

거리에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식량난 해결을 위해 고심하던 나이지리아의 국제열대농학연구소는 한상기 교수의 논문을 보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서울대 농과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던 한 교수는 안락한 교수직과 영국 유명 연구소의 제안을 제쳐두고 이국만리 나이지리아로 떠났다.

'한번 가보지 뭐' 하고 떠난 그곳의 환경은 너무나 열악했다.

길거리에는 탱크가 돌아다니고 농사지을 땅은 메말라 있었고 더욱이 그는 카사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카사바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부딪히기 쉬웠어요.

 

그는 나이지리아 지역 구석구석을 돌며 카사바 종자를 많이 수집했고 원산지 브라질까지 날아가 좋은 종자를 구해왔다.

그렇게 다양한 종자를 확보하고 병에 저항성을 가진 형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2년 후, 수천 개의 계통 중에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저항성이 있는 계통을 발견하게 된다.

나이지리아 재래종과 브라질 야생 카사바의 교배로 얻은 계통을 다시 브라질산 카사바와 교배하고 그렇게 얻은 계통 중에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계통을 선발해 슈퍼 카사바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한상기 박사의 슈퍼 카사바

 

 

하지만 또 다른 문제에 맞닥뜨렸다.

품종 개량에 성공했지만 연구소는 보급에 나서지 않았고 현지 농부들은 낯선 이방인을 경계했다.

그는 슈퍼 카사바를 트럭에 싣고 다니면서 죽어있는 카사바 밭에 직접 심기도 하고 시장에서 나눠주기도 하면서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한 박사의 노력이 빛을 발했고 현재는 나이지리아 500만 헥타르에 걸쳐 재배되고 있다.

 

어린 시절 그는 기근과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는 농민들의 아픔을 보았고 도움이 되고자 농대에 진학했다.

식물학자로서 명성을 얻은 후에도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굶주린 아프리카인에게 달려갔다.

그렇게 아프리카 농업을 위해 23년을 헌신한 결과 지금은 카사바뿐만 아니라 품종이 개량된 고구마, 얌, 바나나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보급되어 재배되고 있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그에게 감동했고 요루바족 이키레 마을의 추장으로 추대하며 그를 세레키(농민의 왕)라 불렀다.

 

나이지리아에서 추장으로 추대된 한상기 교수 아프리카 대륙의 식량난을 해소하다.

 

카사바로 만든 푸푸와 양념

 

까만 나라의 노란 추장

카사바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부딪히기 쉬웠다는 말에서 그의 마인드를 엿볼 수 있다.

식물학자로서 굶주린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에게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부딪히는 마인드가 식량난 해결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것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의 마음까지 얻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 넓은 사하라 사막에서 한 줌의 모래를 집어 봅니다.
이 무진장한 대기 속에서 한 숨의 공기를 마셔 봅니다.
이 무한한 시간 속에서 한번 눈을 살며시 감아 봅니다.
내 맥박을 장단 삼고 저 북극성을 나침반 삼아 드넓은 사하라 사막에 아주 작은 발자국 남기면서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봅니다.

아프리카 광야에서 / 한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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