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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by goodmind.kr 2022. 3. 10.

현대울산조선소
정주영 회장

 

사진 한 장 든 '봉이 정선달'

50여 년 전 정주영 회장은 가슴에 조선소를 건설할 큰 뜻을 품었다.

그는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 한 장과 초가집 몇 채가 보이는 항공사진 그리고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 도면을 들고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영국 최고의 은행인 바클레이스로부터 4300만 달러의 차관(당시 208억 원의 장기저리융자) 도입을 협의하기 위한 자리가 성사되었다.

바클레이스 부총재가 정 회장은 전공이 경영학인지 이공학인지 물었다.

소학교밖에 못 나온 정 회장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다 풀어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업계획서를 읽어 보셨냐'고 물으면서 유머 있게 답했다.

 

지난 일요일에 옥스퍼드에 가서 학위를 달라고 했더니 내 사업계획서를 훑어보고 학위를 줘서 어제 경제학 박사를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다행히 부총재도 '옥스퍼드 박사라도 이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 것'이라면서 웃어주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은행 측에서 영국 수출신용보증에 승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전후의 가난한 나라에서, 더욱이 자전거나 수레를 만들던 사람이 갑자기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것이어서 난관에 계속 부딪혔다.

 

1971년 9월 선박 컨설턴트 회사의 롱바텀 회장을 찾아갔다.

그의 추천서가 있으면 투자를 유치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도 다른 투자자처럼 냉담했다.

정 회장은 갑자기 지갑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지폐 뒷면에 있는 거북선을 보여주었다.

 

500원 지폐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선 1500년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근대 공업화에 뒤졌지만 우리 민족은 엄청난 잠재 능력과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살펴보던 롱바텀 회장은 마침내 정주영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의 추천서를 손에 넣은 정 회장은 차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차관을 받는 일을 계속 험난하기만 했다.

수출신용보증국은 현대가 아무리 큰 조선소를 지어도 배를 사줄 선주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 아니겠냐며 배를 구매할 사람이 있어야 차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아직 짓지도 않은 조선소의 배를 구매할 사람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선박 수주 문제로 고민하던 정주영 회장은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인 썬 엔터프라이즈의 리바노스 회장이 값싼 배를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오나시스와 리바노스는 세계 해운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물들이다.

정주영 회장은 곧장 리바노스를 찾아갔다.

정 회장은 소나무가 찍힌 백사장 사진을 보여주며 당신이 배를 주문하면 영국 정부에서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리바노스는 처음 만난 정주영을 믿고 그 자리에서 수주 계약서에 서명했다.

 

정 회장은 리바노스를 '나보다 더 미친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거기에 파격적인 계약 조건도 한몫을 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계약금에 이자를 얹어주고 배에 하자가 있으면 원금을 다 돌려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리바노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유럽에도 26만 톤급은 그 당시에 없었다.

이게 처음인데 리바노스가 통 큰 결정을 내렸고 대형 유조선 두 척을 발주했다.

그렇게 현대는 영국 수출신용보증국의 차관 승인을 받았고 드디어 조선소 건설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공장도 없고 경험도 아무것도 없는데 세계 최대 선주인 리바노스가 그 당시 최대 규모의 선박을 발주한 것에 온 세상이 놀랐다.

 

현대울산조선소 기공식

 

미래를 위한 울산조선소 착공

1972년 3월 23 드디어 8000만 달러의 거금이 투입된 현대울산조선소의 기공식이 열렸다.

그리고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선박을 건조했다.

다른 나라는 도크(dock)를 만들고 수문을 닫고 선박 건조를 시작하는데 정 회장은 도크의 가운데 타설한 콘크리트가 굳으면 거기다 철판을 놓고 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드라이 도크가 커 나가면서 배도 같이 커 나갔다.

공장도 없이 도크도 없이 모래를 퍼내고 그 속에서 리바노스가 주문한 배 한 척을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방파제를 쌓고 바다를 준설하고 암벽을 만들고 도크를 파고 14만 평의 공장을 세운 것이다.

모든 임직원이 신발끈도 풀지 않은 채 자고 일했다.

진수식을 앞두고 바닥 준설작업이 늦어지자 정 회장과 모든 임직원이 비바람을 맞으며 밤을 새웠고 간신히 배가 빠져나갈 만큼 준설이 되었다.

 

과연 저 무쇠덩이가 뜰 것인가?

 

조선소가 완공되기 전 배를 만들어 진수하는 것은 세계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모래밖에 없던 백사장에 2년 3개월 만에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디어 최대 건조능력 70만 톤 규모의 드라이도크 2기를 갖춘 조선소가 우리나라에 세워진 것이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정주영 회장의 불가능에 도전하는 마인드가 지금의 현대를 있게 했으며 오늘날 현대중공업은 세계 제1의 조선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마인드] - 빈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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