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전쟁이 한창이던 1861년 링컨 대통령은 에드윈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임명하여 전쟁의 지휘를 맡겼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는데 스탠턴은 링컨을 너무 싫어했던 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잘못된(?) 만남은 변호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탠턴은 대학을 졸업했고 유능한 데다 잘생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링컨은 농촌에서 태어나 학교라고는 고작 6개월밖에 다니지 못했고 얼굴이 야위고 말라 볼 품이 없었다.
잘 나가던 스탠턴은 링컨을 켄터키 촌놈, 긴팔원숭이라고 놀렸다.
링컨이 공화당 최초로 미국의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민주당 의원이었던 스탠턴은 링컨과 그의 정책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는 링컨이 하류층의 나약한 정치인일 뿐이라며 능욕했다.
링컨의 수염을 빗대 원숭이 대통령을 세울 바에야 아프리카에 가서 원숭이 한 마리를 사 오는 게 낫겠다"라고 욕을 퍼부었다.
링컨은 북군이 계속 밀리자 군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인물이 필요했다.
링컨의 머릿속에 스탠턴이 떠올랐다.
스탠턴이 비록 자신을 무시했지만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며 열정적인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공화당 사람들은 대통령의 뜻에 반발했다.
언젠가 스탠턴이 링컨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하지만 링컨은 그만한 인재가 있으면 데려오라며 결정에 단호했다.
자신의 행동을 잘 아는 스탠턴은 장관직 제의를 내켜하지 않고 링컨의 속셈을 의심했다.
도대체 왜 내게 국방장관이라는 요직을 맡기는 겁니까?
날 조롱하는 것입니까?
링컨은 잠시 미소를 지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당신이 싫었어요.
그래서 당신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법정에서 변론하는 것을 봤는데 당신만큼 일에 열정적이고 공적 의무감이 투철한 사람은 보지 못했어요.
그 정도의 책임감과 뚝심이라면 국방장관에 적임자 아닌가요?
스탠턴, 나와 함께 나라를 위해 싸워보지 않겠소?
처음에는 오직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락했지만 이후 스탠턴은 링컨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참모가 됐다.
스탠턴은 애국심이 강하고 정직했기 때문에 군대를 강하고 효과적으로 지휘했다.
북군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스탠턴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시 국방장관의 한 사람으로 남았다.
1865년 링컨은 워싱턴 시내 포드극장에서 공연 관람 중에 암살범 부스가 쏜 권총에 맞아 쓰러졌다.
링컨은 길 건너편에 있는 가정집 1층 침대에 눕혀졌고 많은 각료들이 달려와 그의 곁을 지켰다.
가장 완벽한 지도자가 쓰러졌다.
이제 그는 역사가 됐다.
쓰러진 링컨의 곁을 지키며 가장 슬퍼했던 이는 다름 아닌 스탠턴이었다.
나라의 위기 상황에서 링컨은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나라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고 정적을 용서하고 포용했다.
두 사람이 정치적 입장은 달랐어도 나라를 위한 마음 하나는 다를 수 없었다.
용서와 관용의 마인드가 남북전쟁 승리와 함께 노예해방이라는 미국의 정신을 위대하게 만든 것이다.
I have always found that mercy bears richer fruits than strict justice.
나는 항상 가혹한 정의보다는 자비가 더 큰 결실을 맺는다고 믿는다.
- 아브라함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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