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 반 뉴질랜드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와 그의 동반자 텐징 노르가이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올랐다.
존 헌트의 원정대원이었던 그들은 7번째 시도 끝에 등정에 성공한 것이다.
힐러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노르가이는 대영제국 메달을 수여받았다.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는 경험 많은 셰르파였다.
셰르파는 동쪽에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티베트와 인도를 잇는 대상이었고 16세기에 티베트의 고산지대에서 네팔로 넘어와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셰르파는 산악 안내인으로 험한 산길을 안내하고 베이스캠프에 쓸 짐을 나르는 등의 도우미 역할을 한다.
셰프파의 도움이 없이는 히말라야의 험한 설산을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문 산악인들도 한 번의 실수나 눈사태, 기상이변 등 예기치 않은 사고로 동상에 걸리거나 고립되고 아까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산이 허락하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곳이 그곳이다.
그래서 정복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힐러리는 노르가이가 없었더라면 난 산을 오르지도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등정 중에 크레바스에 빠진 적이 있는데 자일로 연결되어 있던 노르가이가 끌어내 주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힐러리와 노르가이는 함께 해발 8,848m 정상을 밟을 수 있었다.
특별한 우정
힐러리와 노르가이의 우정은 특별했다.
그일 후 사람들은 ‘누가 진짜 먼저’인지 추궁했지만 힐러리의 대답은 언제나 ‘함께’였다.
세월이 흘러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르가이가 앞서가다 정상을 몇 걸음 앞에 두고 지친 자신을 30분가량 기다려 주었고 함께 정상을 밟았다고...
다만 노르가이가 카메라 조작법을 몰랐기 때문에 노르가이가 깃발을 꽂는 사진만 남아 있다.
만일 어느 한쪽이 욕심을 부렸다면 한 장의 사진도, 둘의 우정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에베레스트가 허락한 두 사람, 그들의 우정은 누구보다 특별했다.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는 동반자로서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등반의 영예를 안았다.
힐러리와 노르가이의 우정은 계속 이어져 1960년 히말라야 트러스트라는 단체를 설립해 네팔에 학교를 세우고 셰르파를 위한 복지제도를 마련했다.
인생길의 동반자
사실 힐러리와 노르가이의 동반자 관계는 드문 일이다.
셰르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산을 오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짐꾼이나 가이드로 기억될 뿐이다.
우정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함께할 수 있고 동행할 수 있다.
인생길은 때때로 험한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 어떤 산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에베레스트가 힐러리와 노르가이를 먼저 허락한 이유가 아닐까?
이후 천문학자들은 그들을 기념해 명왕성의 높은 산을 힐러리 몬테스와 노르가이 몬테스로 명명하였다.
몬테스는 스페인어로 산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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