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사는 것 자체가 악이 될 수 있을까?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뒤쫓고 있었다.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친위대 장교로서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량학살을 조직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했다.
1960년 5월 11일 저녁,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서 숨어 지내던 그는 결국 체포되었고 이스라엘로 압송되었다.
법정에 선 아이히만의 실체는 큰 충격이었다.
그가 흉악한 괴물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을 감정한 의사들도 그의 정신상태를 매우 정상이라고 판정하며 탄식했다.
자기가 맡은 임무에 충실하고 가족에게 친절한 사람이 어떻게 유대인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었을까?
그는 나치에 부역하는 동안 저지른 유대인 학살 및 전쟁범죄에 대한 15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예루살렘 법정에 선 그에게 나치 및 나치협력자 처벌법에 따라 사형이 구형되었지만 오히려 아이히만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나는 신 앞에서 유죄 일지 몰라도 법 앞에서는 아니다."
"나는 나치 법률체계하에서 단지 국가의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유대인이나 그 누구도 결코 죽인 적이 없고 그런 명령을 내린 적도 없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살인죄에 대한 기소는 잘못되었다고 항변했다.
그 일은 그냥 일어났던 일일뿐 자신은 법과 상관의 명령을 준수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악이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원한 때문이 아니라 단지 출세를 위해 나치의 선봉에 섰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사람이었다.
재판 후 그는 근엄한 태도로 교수대로 걸어갔고 독일 만세를 외치며 의기양양하게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까지 죄를 인정하지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는 그의 모습이 인간으로서 얼마나 참담하지 아니한가?
"나는 괴물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 희생자다."
"오직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며 그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죽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내 자리에 있었어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아이히만이 역사적인 범죄자가 된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려 들지 않은 생각의 무능함(Thoughtless) 때문이었다.
비록 악한 의도를 품지 않았다 할지라도 생각의 무능함이 악이 될 수도 있다.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한 한나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은 사유(思惟)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아이히만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능력이 결여된 사람인 것이다.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줄 모른다면 누구나 아이히만처럼 될 수 있다.
악은 평범한 모습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들 곁에 머물러 있다.
이런 인간의 나약함은 전쟁터 또는 부패한 조직과 그 시스템 아래서 찾아볼 수 있다.
아이히만은 아주 부지런한 인간이었다.
타인의 입장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한 것이 결정적 결함이다.
아이히만의 사례는 성찰하지 않는 인간이 어떤 가공할 결과를 초래하는지, 서로 죽고 죽이는 폭력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권력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될 때 옳고 그름을 가리는 판단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그런 상태에선 악을 악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성실하고도 효율적으로 과업을 완수했던 아이히만은 국가가 원한 도구적인 노예였고 거기서 악은 정당성을 획득했다.
"아이히만은 분명히 유죄다."
"그것은 그의 특징 때문이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을 포기한 그의 행동 때문이다. "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다른 사람의 입장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유가 없는 사회에선 유대인 학살과 같은 만행이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경종을 울린다.
무(無) 사유가 인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
나치즘의 광기든 무엇이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하는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오직 깊이 성찰하고 사유하는 것뿐이다.
-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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