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대결
2016년 1월 27일, 네이처(Nature)에 구글 딥마인드의 논문이 게재되었다.
'딥러닝(Deep Learning) 신경망과 트리 검색으로 바둑 마스터하기'
복잡한 수식과 표로 이루어진 한 편의 논문은 컴퓨터가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는 딥러닝 기술을 바둑에 접목한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계 챔피언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국이 열렸다.
아무리 컴퓨터가 최적의 수를 빨리 계산할 수 있다고 해도 19x19인 바둑판은 모든 경우의 수가 무려 10의 800승이다.
사람들은 쉽게 이세돌의 우승을 예측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수의 위치를 계산하고 탐색 범위를 좁히는 정책망(Policy Network)과 승률을 계산하여 탐색의 깊이를 줄여주는 가치망(Value Network)의 두 알고리즘으로 인간의 직관을 흉내 낸다.
사람이면 1000년 걸리는 100만 번의 대국을 4주 만에 소화한 알파고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있었다.
첫 대국은 이세돌의 충격적인 패배였다.
알파고는 보이지 않는 벽과 같았고 수 읽기에 자신이 없다면 도무지 둘 수 없는 승부수를 놓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대국에서도 패한 이세돌이 말했다.
'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류가 패배한 건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세돌은 포기하지 않았고 남은 네 번째 대국에 임했다.
그리고 대반전이 일어났다.
78수에서 기보에도 없는 묘수로 공격을 하자 알파고는 당황한 듯 이상한 수를 두었고 결국 이세돌은 승리를 따냈다.
78수는 알파고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신의 한 수였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최종 이세돌의 패배 (1승 4패)로 끝났지만 이세돌 9단의 태도는 솔직하고 당당했다.
알파고가 이렇게 완벽하게 둘 줄 몰랐습니다. (1국 패배 후)
오늘 대국에선 제가 한 번도 앞선 적이 없었습니다. (2국 패배 후)
부담감을 이겨내기에는 제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3국 패배 후)
이세돌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고 변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복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4국에서 인공지능을 상대로 기적의 1승, 신의 한 수를 만들어냈다.
묘수는 복기의 선물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그의 마인드에는 복기의 비밀이 숨어있다.
복기란 바둑에서 끝난 대국을 자신이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아 보는 것을 말한다.
그 시간은 유일하게 패자가 승자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다.
복기의 과정은 훌륭한 스승이 되어 보지 못한 길을 보여준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합리화하고 배움을 얻을 복기의 기회를 스스로 져버린다.
사람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배운 만큼 성장하는 법이다.
"복기의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나요?
진 것도 화나는데 졌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한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어떻게 졌는지 모르는 게 더 답답하죠.
어떻게 이겼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어떻게 졌는지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바둑이 스포츠가 됐지만, 저는 바둑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도자기를 구울 때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야 다음에 좋은 것을 만들 듯, 바둑기사는 더 훌륭한 예술 작품을 위해 복기를 하는 겁니다.
알파고를 꺾은 신의 한 수, 이세돌의 78수는 패배를 딛고 나아간 복기의 선물이었다.
이세돌은 이번 대결을 통해 바둑에 대한 열정과 새로운 목표를 찾았고 바둑계 또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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